아버지의 평안도 사투리와 어머니의 당부, 그리고 다시 써 내려갈 나의 가족 이야기

무심한 듯 흐르는 시간 속에서 또 하나의 매듭을 짓습니다. 2025년 12월 31일, 올해의 마지막 태양이 저뭅니다. 사실 자연의 섭리 안에서 오늘과 내일은 그저 어김없이 순환하는 24시간일 뿐이지만, 인간인 우리는 그 경계에 서서 '새해'라는 이름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마음을 다시금 정돈하곤 합니다. 내일이면 우리는 2026년이라는 낯선 숫자와 마주하게 되겠지요.
이 고요한 연말, 서랍 깊은 곳에서 먼지 쌓인 앨범을 꺼내 듭니다. 그리고 아주 먼 옛날, 흑백의 시간 속에 멈춰 있는 사진 한 장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.
찰나였지만 영원이 된 1967년의 기록
1967년 1월 3일이었습니다. 어머니와 아버지는 형과 저의 고사리 같은 손을 이끌고 동네 사진관으로 향했습니다. 새해를 맞아 단란한 모습을 남기고자 했던 그 날의 외출은, 우리 가족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인 '가족사진'으로 남게 되었습니다.
사진 속 젊은 어머니와 듬직했던 아버지는 이제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. 더 이상 그 온기를 느낄 수도,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다가옵니다. 그 옆에 서 있던 유일한 형제인 형조차, 각자의 삶이 버거워 일 년에 한 번 얼굴 마주하기도 쉽지 않은 현실이 야속하기만 합니다. 사진 속 네 사람은 꽉 잡은 두 손처럼 연결되어 있는데, 지금은 시간과 공간 속에 흩어져 버린 것만 같습니다.
실향의 아픔, 그리고 서울이라는 섬
사진 속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귓가에 맴도는 목소리가 있습니다. 투박하지만 정겨웠던 평안도 사투리. 홀로 월남하시어 이 땅에 뿌리내리셨던 아버지는 명절만 되면 갈 곳 잃은 섬이 되곤 하셨습니다. 친구들이 선물 꾸러미를 들고 고향으로 떠나는 모습을 부러운 듯 바라보시던 그 쓸쓸한 눈빛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.
서울 토박이셨던 어머니 덕분에 외가 친척들은 모두 지척에 있었지만, '귀성길'이라는 단어는 우리 가족에게 낯선 남의 이야기였습니다. 묘한 인연의 장난일까요? 저 역시 서울 분과 결혼하여 처가 친척들 또한 모두 수도권에 계십니다. 명절이면 텅 빈 도시에 남아 북적이는 고향 풍경을 상상만 했던 아버지의 외로움을, 저 또한 닮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.
통일이 되면 찾아가야 할 약속의 땅
어머니께서는 생전에 간곡한 당부를 남기셨습니다. 언젠가 통일이 되면, 아버지의 원적을 꼭 찾아가 보라고 말입니다. 한 번도 만나 뵙지 못한 친가 쪽 피붙이들을 만나, 아버지가 그토록 그리워하셨던 고향의 흙을 밟아보는 것. 그것이 남겨진 자식 된 도리이자, 평생 고향을 그리다 가신 아버지께 면목이 서는 일이라 생각합니다.
그 약속은 제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정표로 남아 있습니다.
다시, 가족사진을 찍으러 가는 길

내일이면 2026년 1월 1일, 새 아침이 밝아옵니다.
빛바랜 1967년의 사진을 덮으며 작은 다짐 하나를 세웁니다. 조만간 저도 아내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사진관을 찾아야겠습니다. 반세기 전 우리 부모님이 그러하셨듯, 저 또한 사랑하는 아들과 딸의 곁에 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기록하려 합니다.
언젠가 먼 훗날, 제가 세상에 없을 때 우리 아이들이 그 사진을 꺼내 보겠지요. 그리고 사진 속 젊은 아빠의 미소를 보며 저를 그리워하고 추억해 주기를 소망합니다.
유난히 어머니, 아버지, 그리고 형이 사무치게 그리운 2025년의 마지막 밤입니다.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, 2026년 새해에는 부디 건강하시고 곁에 있는 가족들과 후회 없는 사랑을 나누시길 기도드립니다.
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. ^^